알렉스 콕스의 두번째 장편영화 시드와 낸시(부제:Love Kills)의 사운드트랙으로 Joe Strummer가 두 곡에서만 참여하고 있지만 다음해에 발표된「Walker」 (1987)에서는 전체 영화음악을 담당하게 된다.

Sex Pistols와 가장 가까웠던 그루피들이나 시드의 어머니 앤 베벌리 등 객관적인 증언들에 근거해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알렉스 콕스 자신이 브리티시 펑크신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던 한계 때문인지 그럴듯하게 그려낸 Max's와 뉴욕 뒷골목의 풍경들에 비해 전반부의 묘사는 다소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superb'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열연을 펼친 올드만/클로웹의 연기와 역사상 최악의 실존인물 연기자로 꼽히고 있는 라이든역의 Andrew Scofield, 존재감 없는 멤버들의 역할대비도 매우 흥미로워 보인다.

호텔신에서 등장하는 The Pogues의 "Hot Dogs With Everything"은 사운드트랙에는 수록되지 않았으며 12인치 싱글 "Haunted"의 B-side에만 수록되었다. The Pogues의 틴휘슬 연주자/초기 보컬리스트로 펑크적인 색채가 가장 진한 Spider Stacy가 보컬을 담당한 이곡은 아마도 The Pogues의 곡 중 가장 펑크에 근접한 곡이 아닌가 싶다.

영화에 대한 존 라이든의 언급은 그의 자서전에 소개되어 있다. 다음은 그에 대한 알렉스 콕스의 반응으로 2000년에 있었던 The Onion과의 인터뷰 중 일부이다.
출처: http://www.avclub.com/articles/alex-cox,13678/

O: 라이든이 시드와 낸시의 빅 팬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AC: 그가 영화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우리에게 대부분 호의를 베푸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Sex Pistols가 어떻게 탄생했었는지에 관한 논쟁과 그것들 모두가 네거티브 홍보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대본에 대해 이야기 했고 그는 대본을 봤다.
그와 대화를 했고 그는 자신의 역을 연기했던 배우(Andrew Schofield)도 만났다...
그는 우리에게 매우 친절해서 실제로 그의 영화에 대한 악담은 정말로 매우 친철한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라이든과 맥라렌(매니저 말콤) 모두 그것을 경멸하는 식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대단한 호의였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논쟁거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또, 흥미롭게도 시드와 낸시 이후에 나온 라이든(P.I.L.)의 다음 앨범은 CD 혹은 Album 혹은 Cassette라고 불리는 상표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흰띠가 있는 밝은 블루의 포장에 "album,"이라는 단어만 적혀 있었는데 우리가 Repo Man에서 사용했었던 상표가 없는 포장이었다.
리포맨: http://andanotherthing.chucklehound.com/uploaded_images/repo-man-797865.png
P.I.L의「Album」: http://991.com/newGallery/PIL-Album---Sealed-460581.jpg

그래서 그것에 대해 전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영화에 대한 매력적인 반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좋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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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GUES - Hot Dogs With Everything / CIRCLE JERKS - Love K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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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US 차트에서 동시에 넘버원을 기록한 싱글로 Nile Rodgers가 리믹스를 담당하면서 참여했다. - 이 인연은 Duran Duran의 다음 싱글과 앨범, Power Station 에까지 이어진다.

A-side에는 "The Reflex"의 댄스믹스가 수록되어 있으며 B-side에는 7인치 버전과 Steve Harley & The Cockney Rebel의 "Make Me Smile(Come And See me)"이 라이브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 25회 전회가 매진되었다는 1982년 UK 투어 중 Hammersmith Odeon의 라이브에서 Steve Harley가 직접 무대에 출연했었다고 한다. 이 버전은 어느 앨범에도 수록되지 않고 있다가 CD로는「Threesome」(1994) O.S.T.와「The Essential Collection」(2007)에 각각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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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flex(Dance 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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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이지만 번역문 퍼옵니다. 원문은 쿠바 공산당 사이트에서 찾으시면 됩니다. 다소 거친 번역문입니다만 대략적인 이해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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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 지도자는 다시 한번 제국의 냉소와 거리낌 없음을 비난한다.


이란과 한국에 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핵무기 사용이 뒤따를 절박한 전쟁 위험을 설명하는 두 개의 “성찰”을 집필하는 것 외에 없었다. 나는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추진 중인 결의안을 중국이 거부하기로 결정한다면 그 위험 중 하나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의견도 피력했다.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국가의 광적인 행동에서 비롯되는, 통제 불가능한 요인들에 달려 있다. 미국은 강력한 핵 능력을 지닌 이스라엘을 방조해 왔으며 이스라엘은 미국의 어떤 통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1953년 6월, 미국이 자신과 동맹국 영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슬람 혁명을 분쇄하는 데 처음 개입했을 때 -이는 모함메드 레자 팔레비의 권력 장악으로 귀결되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거의 대부분, 시리아의 일부, (그때까지 아랍 군대가 방어했고, 그 영향이 남아 있는) 이웃한 요르단의 일부를 아직 장악하지 못한 작은 나라였다.

오늘날 미국의 현대식 항공기가 엄호하는 수백 개의 핵탄두 로켓이 아랍이든 비아랍이든, 모슬림이든 비모슬림이든 그 지역의 모든 나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목표 지점의 수 미터 내에 명중할 수 있는 이스라엘 미사일의 넓은 행동반경 범위 안에 있다.

지난 일요일(5월 30일), “제국과 마약”이라는 성찰을 작성했을 때 수천년 동안 자신들의 모국이었던 작은 땅에 포위된 150만 팔레스타인인을 위해 식량, 의약품 등을 수송하는 소형 선박들에 대한 야만스런 공격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었다.

인민의 대다수는 식량, 여가와 공부의 권리, 그밖에 그들의 가까운 가족 성원들의 핵심 문제들을 포함해 삶이 부과하는 필수적인 것들을 해결하는 데 시간을 들인다 ; 그들은 지구상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정보를 찾아볼 시간이 없다. 그들을 압도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의 발견을 타인들이 맡아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그들은 기뻐하고 웃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현실을 침착하게 관찰할 특권을 가진, 우리 가운데 일부를 고마워한다.

(최첨단 기술로 고안되고 고성능의 소나 시스템과 해저 음파 탐지기를 장착한) 남한 천안함을 북한이 그 연안과 마주하는 수역에서 침몰시켰다는 아주 이상한 날조에 의거하여, 북한은 남한 해군 46명의 죽음과 수십 명의 부상이라는 섬찟한 짓을 저질렀다고 비난받았다.

나로서 그 문제를 해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 아무리 많은 권위를 누리는 정부라 할지라도 명령체계를 통해 기함(旗艦)에 어뢰 공격을 명령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김정일이 그 명령을 내렸다는 이야기를 단 1초도 믿을 수 없다.

나는 결론에 다다르는데 필요한 것들이 없었지만 안보리에서 북한을 제재하는 결의안 초안을 중국이 거부하리라는 것은 확신했다. 다른 한편, 통제를 벗어난 이스라엘 정부가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미국이 막을 수 없다는 데 대해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6월 1일 밤 늦게,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비밀의 장막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밤 10시 반, 나는 베네수엘라 텔레비전에서 권위있는 “사건 기록”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언론인 월터 마르티네즈의 날카로운 분석을 들었다. 그는 미국이 남북한 양쪽이 각각 상대에 대해 단언하고 있는 것을 믿게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역주 : 남한 인민은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시켰다고 믿게 만들고, 북한 인민은 남한이 날조하여 북한 책임으로 몰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는 뜻]. 일본 인민들의 소망을 반영하여 새 일본 지도자가 요구했던 오키나와 기지 반환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그의 당은 지금은 발전하여 부유한 국가가 된 일본의 심장에 들이댄 단도(短刀)였던, 65년 이상이나 주둔해 있었던 군사기지의 철수를 장담한 덕분에 선거에서 커다란 지지를 얻었다.

‘글로벌 리서치’에 실린 웨인 메드슨(Wayne Madsen)의 기사 덕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놀라운 세부 사항들이 밝혀졌다. 그는 웨인 메드슨 레포트 웹사이트에 실린 정보원들을 토대로 정보를 유통시켰다.

“남한 해군 대-잠함 초계함인 천안함에 대한 3월의 공격은 북한에서 벌인 것처럼 고안된 위장 공격이었다고 의심된다...”고 그는 단언했다.

“한반도에서 긴장을 높이려는 주된 목적의 하나는 미국 해병대 기지를 오키나와에서 철수시키려는 방침을 뒤엎게끔 일본 수상 유키오 하토야마에게 압력을 가하려는 것이었다. 하토야마는 천안함 침몰에 따른 긴장이 그의 ‘번복’ 결정에 큰 역할을 했음을 시인했다. 하토야마의 결정은 집권 중도-좌파 연립 정부에 분열을 초래했다. 이는 워싱턴이 환영할 사태 전개로서, 사회민주당 당수 미즈오 후쿠시마는 연정 탈퇴를 위협했다.”

“천안함은 남한 연안에서 아주 먼 서쪽 끝에 있고 북한 연안에 마주한 백령도 가까이에서 침몰했다. 이 섬은 좁은 해협 건너편의 북한 연안 방어기지의 포화(砲火) 사정권 내에 있는, 군사기지와 다를 바 없는 섬이다.”

“대-잠 초계함 천안함은 최첨단 소나 뿐 아니라 광대한 수중 청음 소나 배열(array)과 수중 음파탐지기를 장착하고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 잠수함이든 잠수정이든 어뢰를 발사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 항로 상에 거의 선박이 없었기 때문에 바다는 침몰 시각에 조용했다.”

“그러나 백령도는 미-한 합동군사 정보기지 역할을 하고, 미국 해군 특수부대가 이 기지로부터 작전을 벌인다. 게다가 미 해군함정 4 척이 천안함이 침몰할 동안 한미 합동 독수리훈련의 일환으로 그 지역에 있었다. 혐의 대상 어뢰의 금속적 화학적 지문의 조사는 그것이 독일제임을 밝혀냈다. 미국 해군 특수부대가 위장 공격의 그럴듯한 사실 부인을 위해 유럽 어뢰의 샘플을 갖고 있다는 혐의도 있다. 또한 베를린은 북한에 어뢰를 판매하지 않았으며, 독일은 이스라엘과 잠수함과 잠수함 무기 발전프로그램에서 긴밀하게 협동하고 있다.”

“남한 초계함이 침몰할 동안 백령도에 아주 가까이서 독수리훈련에 참여했던 미국해군 살보함의 존재도 문제를 제기한다.

2006년 타일랜드만에서 태국 함정을 위한 기뢰 부설 활동에 참가했던 비전투 해군 구난함 살보는 폭발이 일어날 무렵 12명의 심해 잠수부를 태우고 있었다.”

“베이징은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서둘러 기차를 타고 온 김정일의 무죄 주장을 받아들였고, 천안함 침몰에서의 미국 해군의 역할, 특히 살보함의 역할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그 의심은 다음과 같다 :

1. 살보함은 해저 기뢰부설 작전, 달리 말하자면 수평 발사하는 대 잠수함 기뢰를 항로의 해저에 부착하는 일에 참여했다.

2. 살보함은 해저 기뢰의 일관된 점검, 유지를 하고 있었고 점검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그것들을 전자 감응 모드(일촉즉발 상태로 방아쇠 풀어놓기)로 전환했다.

3. 남한, 일본, 중국의 공공여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벌인 비밀작전의 일부로서, 한 특수부대(SEAL) 잠수부가 천안함에 자기식 기뢰를 부착했다.”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의 베이징, 서울 방문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모든 다른 의제 항목들을 편리하게 덮어버렸다.

그래서 놀랄만큼 쉬운 방법으로, 미국은 중요한 문제를 그럭저럭 해결할 수 있었다. : 유키오 하토야마의 민주당 전국통일 정부를 해체하는 것. 그러나 그 대가는 아주 비쌌다.

1- 그것은 동맹국 남한에 타격을 주었다.

2- 그것은 그 적수 김정일이 행동한 솜씨와 신속성을 부각시켰다.

3- 그것은 중국의 힘이 갖는 위신을 강조했다. 중국 주석은 도덕적 권위를 띠고서 일본 왕 아키히토, 수상, 그 밖의 저명한 일본 인사들과 대응하도록 중국의 주요 지도자들을 파견했다.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세계 여론은 미국의 제국적 정책을 특징짓는 양심의 총체적 결핍을 냉소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

<피델 동지의 성찰>

비극의 문턱에서

2009. 6. 8일, 오후 12시 33분

피델 카스트로 루스(Fidel Castro Ruz)

3월 26일 이후로, 오바마도 남한 대통령도 남한 해군의 기함인 최첨단 대잠함 천안함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천안함은 남북한의 경계에 가까운, 한반도 서쪽에서 미 해군과 함께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46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사건에 대해 미국이 당황스러워하는 까닭은 천안함이 미국에 의해 침몰했다는 사실을 믿을만한 정보원을 통해 남한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림자처럼 미국을 뒤따를 것이다.

세계의 다른 곳에서 상황은 동아시아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건들에 휩싸이고 있다. 그 사건들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초강대국이 그 사건들을 중단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생산한 상당량의 핵 무기를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슴지 않고 동원하고 사용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실을 몰각하는 사람이다.

또다른 심각한 문제는 유엔이 사태의 경로를 변화시킬 아무런 방책도 갖고 있지 않으며 조만간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극단적인 반동분자들이 어떤 적의 오만한 위협에도 고개 숙이지 않을 종교적 전통을 지닌 7천만 민중의 나라, 이란의 결연한 저항에 맞닥뜨릴 것이다. 요컨대 이란은 이스라엘의 위협 앞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인류는 거대한 스포츠 행사들을 점점 더 즐길 수 있다. 스포츠 행사들은 일상 잡일에 바쳐진, 그들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의무들 속에서 한정된 자유 시간만을 누리는 여가, 문화 등과 관련되어 있다.

며칠 뒤에는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그들의 여가시간을 모두 잡아먹을 것이다. 그들은 들뜬 마음으로 유명한 선수들의 활약에 울고 웃을 것이다. 그들은 마라도나의 모든 발자취를 뒤쫓을 것이고, 아르헨티나의 승리를 결정지었던 특별한 골을 한 순간도 잊지 않을 것이다. 또다른 아르헨티나 선수가 화려하게 등장할지 모른다. 그는 키가 작지만 아주 빠르고 번개처럼 날아가서 놀라운 속도로 슛을 쏜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메시로 이미 모든 축구 팬들에게 알려졌고 존경받고 있다.

팬들의 상상력은 경기가 벌어지는 숱한 경기장의 이미지와 더불어 점점 격렬해진다.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은 일반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새 시대가 그들에게 부과하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숱한 회의를 해야 했던 정부들로서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들이 끊임없이 폭로해내는 수많은 소식들을 새길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다.

그들은 참모가 제공하는 정보에 거의 모든 것을 배타적으로 의존한다. 기본 결정을 내리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수뇌부 몇몇은 휴대 전화를 사용해 하루에도 몇 차례나 서로 소통하는 데 익숙해 있다. 세계의 수백만 민중들은 이것들이 인간 건강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모른 채 이 작은 기계를 달고 산다. 휴대 전화는 우리 시대, 즉 몇 년 지나서 거의 감지할 수 없이 급속하게 사라져가는 시대에 그러한 가능성을 누릴 수 없다고 느낄 우리의 부러움을 누그러뜨린다.

우라늄 농축 중단을 거부한 이란에 대해 4차 제재를 부과하는 (심리 중인)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가 오늘 표결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어제 발표되었다. 회오리 바람이 몰아닥칠 조짐이다.

이 상황의 아이러니는 그것이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라면 ‘이스라엘이 비확산조약에 가입하지 않았다’며 미국과 그 가까운 동맹들이 결의안을 즉각 거부했으리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란은 단지 20%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것뿐인데도 비난을 받고 그 목을 조를 경제 제재가 즉각 단행되는 반면, 이스라엘은 항상 파시스트의 열광으로 행동할 것이 분명하다. 가자 지구의 포위된 민중을 위해 식량을 수송하던 구호 선단에 탑승했던 사람들에게 아침 일찍 헬리콥터로부터 투입된 이스라엘 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여러 사람을 죽이고 수십 명을 다치게 했으며 이들 부상자들을 선원들과 함께 모두 잡아갔다.

그들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파괴하려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란이 그 불평등한 취급에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분규의 결과는 참혹하고 어떤 경제위기가 초래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영향을 인류에게 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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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8 10:45 2010/07/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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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sam 2010/07/28 14:07

    형님 이거 슬쩍 퍼가도 되겠습니까?

    • Punk77 2010/07/28 15:17

      나도 퍼온건데.. 안될게 뭐가 있겠나
      볼만한 사람들은 이미 많이 본 글이기도 하고..^^;;

  2. Ssam 2010/07/29 00:49

    그럼 슬쩍~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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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발매와 함께 UK Official Chart 1위에 오른 싱글로 영국에서는 EMI, 미국에서는 Capitol을 통해 발매됐다.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던 영국 뉴웨이브 아티스트들의 미국상륙은 MTV의 성공적인 론칭에 힘입어 메이저 시장으로 점차 그 세력을 넓혀 갔는데 1983-84년은 2nd British Invasion으로 명명된 그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로 Duran Duran의 'Sing Blue Silver' 투어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 물론 많은 밴드가 이 과정에서 미국시장을 의식한 나긋나긋한 스타일로 변질되어 가긴 했다. UK출신임을 내세웠던 초기와 달리 밴드가 영국출신이냐 미국출신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영국에서처럼 대중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싱글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는 앨범에 수록되지는 않았는데 같은 해 Capitol에서 데뷔앨범이 재발매 되면서 함께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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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ster 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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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7 21:41 2010/07/2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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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하드코어 펑크 밴드 M.A.F.(Mut Aus Flaschen)가 1983년에 Rock-O-Rama에서 발매한 LP「Hau Ab...」에 3곡의 보너스 트랙을 추가해 Krachschwindel Records에서 1998년에 재발매한 LP이다.

Skrewdriver의 앨범을 발매하면서 유명해진 Rock-O-Rama는 80년대 초에 언더그라운드 펑크밴드들의 앨범을 발매하다 펑크의 열기가 시들해지자 80년대 중반부터는 네오나찌/파시스트 밴드들의 레코드로 세일즈 포인트를 전격 이동했다. 로커빌리와 블루스 팬이라고 하는 Rock-O-Rama의 소유주 Herbert Egoldt는 좌와 우를 횡단하는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을 거느리고 많은 돈을 벌어들였으며 2005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Ian Stewart는 자신들이 Sham69과 같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지만 신념 때문에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Rock-O-Rama의 행보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Sham69의 "If The Kids Are United" 커버, UFO의 "Doctor Doctor" 리프와 코드진행을 그대로 도용한 "Kein Beton" 같은 곡들은 매우 흥미롭다. 스타일리쉬하게 포장된 영, 미의 하드코어 펑크밴드들에 비해 투박하고 전통적인 로큰롤의 이미지를 벗어던지지 못했던 유럽의 펑크밴드들은 자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독일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M.A.F." 같은 밴드송에서 그들의 나이브한 분노는 Rock-O-Rama가 극우성향으로 발길을 돌리던 시점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하는 외국산 혐오로 표출되고 있다. (이들은 네오나찌 밴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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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in Beton"


"Totsaufen"
 

"Alle Ma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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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7 16:22 2010/07/2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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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Dolls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스타일을 찾기 시작한 앨범으로 첫번째 솔로앨범부터 함께 해온 New York Dolls 시절의 동료 Sylvain Sylvain은 단 한 곡 "Bohemian Love Pad"에만 참여했다.

대부분의 곡에 Beach Boys의 멤버였던 Blondie Chaplin이 프로듀서/공동작곡자/기타리스트로 참여했으며 여기서 경험했던 솔로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은 그의 페르소나 Buster Poindexter를 통해 80년대 후반의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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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of Gold" 

"Marquesa de S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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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Murphy의 싱글 중 가장 큰 히트를 기록했던 "Cuts You Up"이 수록된 세번째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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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ts You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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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Paley와 함께 Paley Brothers를 결성하기 전 Jonathan Paley는 70년대 초 뉴욕에서 Mong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뉴욕펑크의 씨앗을 뿌렸다. Televison, Heartbreakers 같은 밴드들을 중심으로 뉴욕펑크가 꽃을 피우기 시작할 무렵, 보스톤에서는 Paley 형제의 주도 하에 보스톤 펑크의 또 다른 개척자 Nervous Eaters의 멤버들, 1972년에 앨범을 발표한 바 있는 보스톤의 프로토 펑크밴드 The Sidewinder의 기타리스트 Eric Rose 등이 참여한 파워팝밴드 Paley Brothers가 탄생한다.
Jonathan은 Heartbreaker의 멤버가 될 뻔했지만 드러머 Jerry Nolan의 반대로 펑크 수퍼그룹의 탄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Andy는 Jerry Harrison과 함께 Catfish Black이라는 밴드에 있었으며 Jerry Harrison은 Modern Lovers를 거쳐 Talking Heads를 결성했다.

틴에이저들을 겨냥한 팝앨범으로 기획된「The Paley Brothers」(1978)는 레코드사의 바램대로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지만 언더그라운드 팝/록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으며, 보스톤의 파워팝 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70년대 초중반, 메이저에서 정체기를 보내는 듯 했던 팝밴드들은 펑크시기를 전후로 부활하기 시작하면서 포스트록 시대에 상업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성공적인 시기를 보냈는데 이는 50~60년대 팝과 모던팝의 절묘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The Paley Brother 같은 언더그라운드 팝밴드들의 생명력과 실험정신에 기인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Jonathan은 Paley Brothers 이후 Brian Wilson(ex Beach Boys)이나 Jerry Lee Lewis 같은 뮤지션들과 보스톤/뉴욕 출신 펑크밴드들의 프로듀서로서 성공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이 앨범은 후에 일본에서만 CD로 소량 재발매되었다.

글출처
http://www.punkblowfish.com/BlowfishPaley.htm

"Come Out And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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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만 발매된 12인치 EP로 5곡의 디스코믹스 버전을 수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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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Moon On Mo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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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cky 2010/07/26 22:20

    아~ 또 이 훈훈한 포스팅에 댓글을 안 달 수가 없네요. 다시 공연 안 오나.. 이언브라운 공연도 귀차니즘으로 안 간 녀석이지만 이들 공연은 다시 보고 싶군요. T_T

    • Punk77 2010/07/27 13:21

      금방이라도 다시 올 것 같이 얘기하더니 아직 소식은 없는 것 같네요.. 공연장 밖에서 소리 지르며 달려가시던 중년의 언니들이 갑자기 생각나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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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Feelgood을 나온 Wilko Johnson은 Ian Dury & The Blockheads의 기타리스트로 가입하기 전 자신의 밴드 Solid Senders와 함께 잠시 활동하면서 싱글 한 장과 앨범 한장을 내놓는다. Solid Senders의 이름은 싱글에서 Wilko Johnson의 이름과 나란히 표기되어 있는데 이후 발매된 첫번째 앨범에서는 Wilko Johnson's Solid Senders으로 표기된다.

Official Website
http://www.wilkojohnson.org

"Walking On The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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