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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2/12 Punk77 VIC GODDARD
  8. 2008/02/12 Punk77 BIKINI KILL
  9. 2008/02/12 Punk77 VELVET UNDERGROUND (2)
  10. 2008/02/12 Punk77 MALCOLM McLA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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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결성되어, 사이키델릭한 음악에서 프로그레시브한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했다. 영국 출신 그룹 중에서 프리티 씽스만큼 미국에 알려지지 않은 밴드는 없을 것이다.

믹 재거와 비슷한 스타일의 필 메이와 기타리스트 딕 테일러는 1960년대 중반에 초기 롤링 스톤즈 사운드의 원판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두 음반은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다. “Don't Bring Me Down”과 “Honey I Need”를 크게 히트시키기는 했지만 미국 시장에는 알려지지 못했다. “Don't Bring Me Down”은 데이빗 보위의 <Pin Ups>를 통해 알려졌다(이 음반에 그들의 또 다른 곡인 “Rosalyn”이 있다).
1967년이 되어 그들은 보 디들리 스타일보다는 핑크 플로이드 등의 스타일로 변신해 1968년에 락 오페라 <S. F. Sorrow>를 냈다. 이 음반은 피터 타운쉔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락 오페라 <타미>를 완성할 수 있도록 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연주 활동들을 소극적으로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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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0 21:08 2008/12/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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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결성되어 펑크의 원형들을 보여준 밴드로 1966년 그런지한 기타 코드와 오카리나(ocarina) 솔로가 있는 “Wild Thing”으로 차트의 정상을 기록했다. 이 곡은 지미 헨드릭스가 1967년 몬트레이 페스티발에서 사이키델릭으로 개조한 것도 아주 유명하다.
주로 파워 팝과 발라드를 불렀는데 1968년에는 당시 히피들의 플라워 파워 운동을 찬양한 “Love Is All Around”로 5위로 올라섰는데 이는 R.E.M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이들은 영국에서보다는 미국에서 인기가 더 있었다. 지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리석은 밴드는 아니었는데 고딕 발라드인 “Cousin Jane”이나 사이키델릭 음악인 “Maybe the Madman”을 들어보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그들은 정력적으로 라이브를 진행하였는데 펑크와 뉴 웨이브의 전성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Ramones와 초기 MC5가 끼친 영향력과 맞먹는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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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0 20:11 2008/12/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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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결성되어 여러 멤버들이 있기는 했지만 마크 볼란의 밴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카리스마는 밴드 내 여러 구성원들을 압도했다. 초기에는 영국의 포크 락 듀오인 티라노사우러스 렉스로 시작해서 락 쪽으로 사운드를 강화해 가고 화려한 치장 등으로 데이빗 보위와 함께 글램 락이라는 씬을 만들어 나갔다.

미국에서는 “Get it on” 한 곡의 히트밖에는 없었지만 영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어 자신의 TV 쇼를 진행하는 위치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1977년 글로리아가 운전하던 차의 사고로 죽고 밴드는 1978년 해산하였다. 그의 음악은 소비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돌이켜 보면 현재도 그의 영향력은 놀라울 정도다. 하드 락이나 메탈 벤드들은 밴드의 이미지와 강하게 지속되는 기타 음을 가져왔고, 펑크 밴드들은 하이힐이나 깃털 옷 등은 버렸지만 그의 3코드 주의와 팝 미학은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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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0 20:09 2008/12/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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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는 1960년대 전설적인 아티스트들과 낭만적으로 사귀고, 공동 작업을 한 매력적인 아티스트다.

그녀의 첫 경력은 유럽에서의 슈퍼모델로 시작한다. 1965년에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라 돌체 비타>에 출연하고 알랑 드롱의 아들을 낳는다. 그녀는 롤링 스톤즈의 매니저인 앤드류 룩 올드함의 눈에 들어 첫 레코딩을 하게 되는데 서포트 뮤지션으로는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존스와 나중에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지미 페이지가 들어간다.
이후 그녀는 뉴욕으로 옮겨 앤디 워홀에 의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1967년 데뷔 음반에 리드 싱어로 3곡을 취입한다. 그러나 밴드는 정규 멤버로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는 밴드를 나와 잭스 브라운과 루 리드, 존 케일의 어시스트로 음반 <Chelsea>를 낸다.

1969년에는 케일의 프로듀서로 암울한 고딕적 분위기의 <The Marble Index>를 발매하였고, 1970년에는 브라이언 이노와 필 만자네라 등의 아트 락 아티스트의 지원을 받아 음악 활동을 계속 해나간다. 그러나 마약과 난잡한 생활 등에 의해서 계속 망가지면서 라이브 음반들과 촬영 등은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원조 고딕 라커로 날이 갈수록 그녀의 영향은 강해져 간다.

밥 딜런, 잭슨 브라운, 벨벳 언더그라운드, 롤링 스톤즈, 짐 모리슨, 이기 팝 등과의 환상적인 스토리는 그녀의 전기인 <Nico: The Life & Lies of an Icon, by Richard Witts>와 <The End, by James Young>을 통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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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0 18:10 2008/12/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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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결성되어 1975년 해산한 밴드로 최초의 펍 락 밴드로 일컬어진다. 당시 데이빗 보위 등의 글램 락이나 예스나 제네시스 등의 아트 락과는 확연하게 다른 노선을 취한 밴드로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척 베리나 리틀 리처드 스타일의 미국 R&B를 영국의 노동자 계급들이 모이는 선술집에서 지조 있게 연주해 나가던 밴드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해산한 지 3년이 지나서야 미국에 그들의 세 장의 앨범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아마도 이들이 모터스나 루머 등의 밴드와 비슷하게 간주되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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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8 09:53 2008/12/1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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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생으로 보컬, 키보드, 하모니카, 기타 등을 다루는 멀티 플레이어로 현대 음악의 개척자이다.

4옥타브 반의 음역과 독특한 리듬, 부조리 가득한 가사와 프리 재즈와 델타 블루스, 클래식 음악과 록 음악까지 다양하게 교배해 버리는 뮤지션으로 라이벌이 없었다. 그는 주류 음악에 진입한 적이 없었지만, 펑크와 뉴 웨이브와 포스트 록에 그가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모하비 사막 지역에 살 무렵 어린 시절 친구인 프랑크 자파에게 색소폰과 하모니카를 가르쳤다. 후에 자파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고, 마더스 오브 인벤션을 결성한다. 비프하트는 그의 예명을 비프하트로 정하고 자신의 밴드인 매직 밴드를 1964년에 결성한다.

“Lick My Decals off, Baby”, “Trout Mast Replica” 등으로 대표되는 기상 천외한 음악들을 계속 선보이고, 자파와 함께 작업도 많이 했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내 죽이 너무나 잘 맞는 이들은 평생의 음악 친구로 교류하면서 함께 곡 작업을 하면서 9시간 동안 28곡을 만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82년에 음악계를 완전히 은퇴하고 화가의 길로 들어서, 그림 당 25,000달러에 팔릴 정도의 명성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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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2 12:11 2008/02/1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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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way Sect의 리더로 Sex Pistols의 공연에 항상 온 그에게 말콤 맥라렌이 밴드를 만들 것을 제안해 Subway Sect를 1976년 결성하고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전설적인 100 클럽의 펑크 페스티발에 참가하고 1977년 클래쉬의 White Riot 투어에 참가한 뒤, 클래쉬의 매니저인 버니 로즈의 도움으로 첫 음반을 제작하는데, 버니 로즈는 녹음 중 고다르를 제외한 모든 멤버를 해고시켜 버린다. 이후 새로이 밴드를 구성해 활동하던 그는 소울 음악을 그의 음악 내로 점점 수용하였고, 1982년 <Songs for Sale> 음반에서는 그의 영웅인 콜 포터를 추종한 카바레 스타일의 팝 음악을 선보였다.
이후 멤버들은 그를 떠나서 Jo-Boxer를 결성하고 몇 곡의 히트곡들을 내었다, 이후 고다르는 재즈 뮤지션들과 <T.R.O.U.B.L.E>을 만들었으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 녹음 완료해인 1984년에는 내지 못하고 2년이나 지나 발매한다. 이후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우편 배달부 일을 하다가 1990년에야 에드윈 콜린스의 프로듀서로 <End of the Surrey People>을 내면서 음악 활동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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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2 12:09 2008/02/1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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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결성된 밴드로 그들의 레이블명인 ‘Kill Rock Stars’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디 중의 인디였다. 남성 중심의 인디 록 문화를 페미니즘의 이념을 내용으로, 원초적인 펑크 음악을 형식으로 하여 폭발시키려고 하였다. ‘Revolution Girl Style Now’를 내세우고 록 음악에서 여성의 시대를 열어 나가는 데 기여했다.
팬진을 만들고 밴드를 만들기로 한 이 올림피아 여대생들은 전직 스트립걸인 싱어송라이터 하나를 필두로 하여 남성들의 거친 슬램이 난무하여 공연장 주변에서만 여성들을 머물게 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전통에도 공격적인 정치 자세를 취했고 공연 중 여성들을 무대 위로 올려 성적 학대나 모욕 등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들의 첫 데뷔 데모 카세트인 <Revolution Girl Style Now>를 Fugazi의 이언 맥케이의 프로듀서에 의해 내놓았다. 1992년 허기 베어와 영국 공연에 들어가면서 라이옷 걸 무브먼트를 열어 나갔다. 미국에 돌아온 후 라이옷 걸 무브먼트 미학의 초장기 전형으로 밴드를 돕던 조안 제트가 프로듀서를 맡아 <New Radio>, <Rebel Girl>을 발매했고 하나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조안 제트의 새 앨범 <Pure and Simple>에 공동 작곡자로 참가한다. 1994년 <Pussy Whipped>(채찍질 당한 씹)이라는 노골적인 제목의 음반을 발매하고 조용히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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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2 12:08 2008/02/1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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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싸구려 도색잡지의 이름을 따 결성된 밴드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 비자레에서 20세기 팝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과 만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밴드는 앤디 워홀의 쇼인 <Exploding Plastic Inevitable>에 동행하면서 채찍질로 공연을 난장판을 만들었다. 워홀은 Nico를 밴드의 여성 보컬리스트이자 퍼커션 주자로 넣어 유명한 바나나 그림이 있는 첫 음반 <Velvet Underground & Nico>를 1966년에 프로듀서 해주었다.

밴드의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 리드와 워홀은 사제지간이 아니라 동성 연인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루 리드는 “I'm Waiting For The Man”에서는 헤로인을, “Run, Run, Run”에서는 코카인을, “Venus in Furs”에서는 피학성 음란증을 다루어 대부분의 곡들은 방송 금지가 되었다. 1973년 해산했지만 이들의 활동 시절 겨우 몇 백장만 나간 그들의 음반들이 1980년대 들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대중들보다는 뮤지션들이, 그들이 받은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재조명된 것이다. 이후 재결성 움직임들이 있었지만 1995년 스터링 모리슨의 병사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공연 이후, 이들의 재결성은 완전히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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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2 12:07 2008/02/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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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unxless 2008/02/14 19:42

    I'm Waiting For The Man 아닌가요?
    26달러쥐고 마약상 기다리면서 똥줄타는 심정 표현했다는...
    비키니킬에 대한 글 읽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한참 웃었습니다.

  2. Punk77 2008/02/15 09:11

    헉 맞네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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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Pistols의 악명 높은 매니저로 알려졌던 인물로 1980년대에는 자신도 뮤지션이 되었고, 영국에서는 꽤 히트한 곡들을 만들었다.

그는 1963년 성 마틴 예술학교를 시작으로 1971년 골드스미스학교까지 무려 6군데의 예술학교를 다녔는데 이 시절에 그는 상황주의에 흥미를 가졌고 이를 대중 문화 프로모션에 활용하고자 했다. 의상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골드스미스학교 시절부터 시작돼 졸업을 포기하고, 1972년에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SEX라는 숍을 열었다.
뉴욕 부티크 페어에서 그는 뉴욕 돌즈의 멤버들을 만나게 되고 1974년부터 그들의 매니저를 맡는다. 붉은 가죽과 소련 국기에 나오는 “망치와 징”을 무대에 올리고 홍보 사진들을 뿌렸다. 그러나 이는 공산주의를 증오하는 미국인 정서에 맞지 않아 뉴욕 돌즈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귀국 후, 그는 뉴욕 돌즈를 통해 배운 매니저 일을 런던에서 하고 싶었고 이는 섹스 피스톨즈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1979년에는 다큐멘터리 <The Great Rock ’n’ Roll Swindle>에서 사운드 트랙 앨범에 “You Need Hands”를 부름으로써 자신도 데뷔를 한다. 바우 와우 와우와 보이 조지 등을 발굴하는 일을 하면서 그 자신도 뮤지션으로 꾸준히 활동을 한다. 포크 음악과 힙합을 합성한 “Buffalo Gals”를 1982년 낸 이후, 1998년까지 영국 차트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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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2 12:07 2008/02/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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