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길 만길 삶의 나락으로 추락한
계급의 저 패잔병들을 보아라
그들은 지금 기어오르고 있다 절벽을
수천 마리 시궁쥐의 형용으로 기어오르고 있다
수만 마리 구더기의 몸부림으로 기어오르고 있다
밧줄도 없이 무기도 없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렇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들은 기어오르고 있다 처절한 포복으로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기어오르고 있다
발바닥에 피가 나도록 기어오르고 있다
미끄러져 얼굴이 죽사발이 되면서도
떨어져 대갈통이 산산조각이 되면서도
그들은 다시 기어오른다 눈도 없이 코도 없이 맹목의 본능으로
계층상승을 위해서라고? 오 맙소사!
천명에 하나 꼴로 그것도 운수대통 해야
절벽의 가장자리에 손을 얹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나가떨어지고 만다 승자의 발에 턱이 걷어채여
계층상승을 위해서라고? 오 맙소사!
만 명에 하나 꼴로 그것도 운수대통 해야
평지에 발을 올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멧돼지처럼 좌충우돌하다가 삶의 무게에 깔려 죽든지
부자집 문턱을 갉아대다가 야경꾼에게 덜미가 잡혀 철창에 내던져진다
오 고매하신 학자님이여 그들에게 주지 말라 계층상승의 환상을
오 자비로우신 신부님이여 그들에게 주지 말라 자선남비의 뚜껑을
패잔병에게 필요한 것은 가차 없는 무기다
그들에게 주어라 밧줄을 부자들의 담을 타고 넘도록
그들에게 주어라 비수를 부자들의 심장에서 피를 보도록
그들로 하여금 야들야들한 놈들의 허벅지살을 벗겨서 겨울옷을 해 입도록 하라
그들로 하여금 자르르 기름기가 도는 놈들의 배때기를 저며서 고깃국을 끓여 먹도록 하라
손톱 발톱 다 빠지게 일하고도 그들이 쪼르륵 소리가 나도록 배가 고플 때
놈들은 빈둥빈둥 놀고도 배가 터지도록 처먹었다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그들이 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때
놈들은 느긋하게 꽃방석에 앉아 그들의 딸들을 요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이상은 바라지 마라
그들에게 이 이하도 바라지 마라.
<김남주 시집 - 조국은 하나다>
lumpen: 누더기, 넝마, 쓰레기, 폐물
lump: 누더기를 걸친 사람, 비참한 인간, 룸펜, 불량배, 비양심적인 인간, 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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