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펍록'에 해당되는 글 11

  1. 2009/04/24 Punk77 DR.FEELGOOD - Sneakin' Suspicious(1977)
  2. 2008/09/28 Punk77 Radio Stars - Dirty Pictures(1977)
  3. 2008/09/04 Punk77 Eddie And The Hot Rods - (I Don't Know)What's Really Going On(1977)
  4. 2007/12/04 Punk77 Motors - Airport(1978)
  5. 2007/05/12 Punk77 THE COUNT BISHOPS
  6. 2007/05/10 Punk77 THE POGUES
  7. 2007/05/10 Punk77 101ERS
  8. 2007/05/03 Punk77 WRECKLESS ERIC
  9. 2007/05/03 Punk77 GRAHAM PARKER
  10. 2007/05/03 Punk77 NICK LO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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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ko Johnson이 마지막으로 참여하게 되는 앨범 「Sneakin' Suspicious」(1977)는 아쉬운 앨범으로 기억된다.

오소독스한 멜로디와 리듬감으로 Dr. Feelgood 사운드의 기타팝적인 핵심요소를 쥐고 있었던 공동작곡자 Wilko의 탈퇴는 밴드에게는 커다란 불행이었다. 이후 Nick Lowe의 지원하에 발표된 R&B적 요소들이 많이 줄어든 깔끔한 앨범들은 몇곡의 싱글히트곡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초기의 사운드에서 많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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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4 18:21 2009/04/2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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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택의 거실에서 레코드 자켓을 만들고 포장, 우편판매까지 도맡아 하면서 시작했다는 Chiswick Records의 1977년에 발표된 샘플러 형식의 첫번째 LP<Fool's Gold> 첫번째 모음집 중 Radio Stars의 데뷔 싱글이다. - Chiswick Records에 대해서는 리차드 브랜슨의 자서전 <Losing My Virginity>에도 재미있게 언급되고 있다. Chiswick은 샘플러 형식의 모음집을 자주 선보였다.

영국의 초기 펑크운동의 역사를 언급하는데 있어 Chiswick의 역할이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하는 이유는 후에 런던을 중심으로 한 펑크운동 폭발의 중심 역할을 했던 수많은 인디레이블들의 원형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많은 70년대 영국 펑크밴드들의 롤모델 역할을 했던 밴드들이 Chiswick을 통해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스트러머의 첫번째 펍록 밴드인 101ers를 비롯해 펍록이 펑크로 넘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The Count Bishops, Gorillas(Gorillas의 정규앨범 곡들은 찾아 듣기 쉽지 않다.) 그리고, 후에 백인우월주의 스킨헤드 밴드로 변신한 Skrewdriver의 데뷔싱글에서 Chiswick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은 Motorhead까지 펍록, 로커빌리, 블루스, 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들이 어떻게 펑크라는 형식으로 변신을 시도하게 되었는지 그 출발지점을 가늠할 수 있는 다양한 증거들이 Chiswick Records에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영국 1세대 펑크운동의 출발을 알렸던  Radio Stars도 Chiswick 을 통해 "Dirty Picture"로 첫 선을 보였다. 이 앨범은 시디로도 재발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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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8 01:32 2008/09/2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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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많은 펍록 밴드들이 Sex Pistols의 공연을 보고(조스트러머에서 이언 스튜어트까지 그 부류도 다양하다.) 펑크밴드를 새로 결성하거나 밴드를 아예 펑크 스타일로 변화시켰다.

Eddie And The Hot Rods는 이러한 흐름에 불을 지핀 밴드로 음악의 형식미는 70년대 브리티시 펑크밴드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번째 앨범 <Teenage Depression>에 뒤지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는 두 번째 앨범 <Life On The Line>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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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18:29 2008/09/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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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s의 앨범들 중 음악적, 상업적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두 번째 앨범 <Approved By The Motors>(1978)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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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16:47 2007/12/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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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Feelgood 이나 Eddie And The Hot Rods 같은 영국 초기의 펍록의 강한 영향을 받은 The Count Bishops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건너와 런던출신의 밴드 Chrome의 로드매니저로 활동하던 보컬리스트 Mike Spenser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가끔씩 밴드에 가담해 노래를 부르곤 했던 Mike Spenser는 친구인 기타리스트 Johnny Guitar의 전화연락을 받고 밴드에 가입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날아간다. 밴드이름을 The Count Bishops로 바꾼후 1975년, 영국초창기 펑크신의 중요한 인디레이블이었던 Chiswick Records와 계약하고 EP《Speedball》를 발표한다.

75년12월에 발표된 이 앨범은 초기 뉴웨이브 앨범의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했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Mike Spenser 가 떠나고 걸쭉한 목소리의 주인공 Dave Tice가 들어온다. (Mike Spenser는 후에 자신의 밴드 Cannibals를 결성한다.) 나머지 멤버는 두명의 기타리스트 Zenon De Fleur와 Johnny Guitar, 베이스 연주자인 Pat McMullan, 드러머 Paul Balbi로 1978년 'I Want Candy' 발표 이후에는 밴드명을 그냥 Bishops로 바꾼다.

1978년 2월, 전설적인 Chalk Farm Roundhouse에서의 라이브 앨범 발표 이후 같은해 3월 17일 런던에서 기타리스트 Zenon De Fleur 자동차 사고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데 그의 나이 불과 28세였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새앨범《Cross Cuts》의 발매는 무기한 연기되고 계속해서 그 없이 연주활동을 해나가지만 밴드는 해산하고 만다.

그러나, 1979년 12월《The London R&B Sessions》라는 컴필레이션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슬링턴의 Hope And Anchor이라는 펍에서의 라이브 곡으로 다시 컴백한 밴드는 Dave Tice (vocals, harmonica), Johnny Guitar (guitar), Pat McMullan (bass), Charles Morgan (drums)의 멤버로 다시 돌아왔으며 Johnny Guitar는 곧 Dr. Feelgood에서 탈퇴한 John Mayo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밴드를 떠나며 The Bishops는 1984년 마지막 곡을 레코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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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GUES

Band Information/N·O·P·Q·R·S | 2007/05/10 22:28 | Punk77
70년대 말 London punk scene에 등장한 Pogues는 처음에는 Pogue Mahon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었다 (영어로 번역하면 Kiss My Arse로 풀이된다고 한다). 이들은 아일랜드의 전통음악을 펑크버젼으로 편곡해 런던시내의 펍등에서 연주하곤 했다.

10대 펑크밴드인 "The Nips"에 있었던 밴드의 프론트맨 Shane McGowan (vocal)을 중심으로 Peter 'Spider' Stacy (tin whistle), Jem Finder (banjo/madolin), James Fearnley(guitar/piano accordion), Cait O'Riordan (bass), Andrew Ranken (drums)의 대식구로 이루어져 있었다.

Clash의 무대에 오프닝 밴드로 출발한 밴드는 폭동에 가까운 라이브쇼와 무대 위에서의 잦은 싸움, Stacy의 맥주통을 머리로 들이받는 등의 예측할 수없는 행동들 때문에 레코드 회사들로부터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84년에 가서야 가까스로 Stiff Records와 계약을 맺은 후 데뷰앨범인《Red Roses For Me》를 발표한다. Elvis Costello가 프로듀스한《Rum, Sodomy And The Lash》를 발표하면서 Finer가 '아버지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그룹을 떠나고 전 Radiators From Space의 기타리스트였던 Philip Chevron이 가입한다. 그룹은 강력하고 개성있는 라이브와 함께 상업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UK Top 20에 진입한다. 그룹내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는데, 전 Steeleye Span의 창단멤버였던 멀티 연주자 Terry Woods가 새로운 멤버로 가입하고 Cait O'Riordan이 Darryl Hunt로 교체된다. 그녀는 후에 Elvis Costello와 결혼하기도 한다.

밴드의 정치적 행동은 싱글 "A Pair Of Brown Eyes"와 함께 발매된 비디오 클립을 재편집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는데, 비디오 클립의 내용중, 당시 수상인 마거릿 대처의 포스터에 침을 뱉는 내용 때문이었다.《If I Should Fall From Grace With God》은 Steve Lillywhite에 의해서 프로듀스됐는데 중동과 스페인 고전음악의 요소들을 수용한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20만장 이상 판매됐고, 앨범 중 Lilywhite의 부인인 Kirsty MacColl과 MacGowan이 듀엣으로 부른, 신랄한 비판이 돋보이는 싱글 "Fairytale Of New York"은 1987년 크리스마스에 UK차트 2위까지 기록한다.

1989년 가을에는 MacGowan의 지나친 음주습관으로 인해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이 잦아졌고, 그룹의 미래는 불안하게만 보여졌다. Bob Dylan과의 대규모 미국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던 MacGowan은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서 맥없이 쓰러지고, 밴드는 MacGowan 없이 공연을 치룬다. Chevron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다른 밴드들 같았으면 '그자식을 쫒아내 버리자.' 혹은 '해산하자.'라고 했겠지만 우리는 그런 밴드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들이 좋아하건 아니건 간에 모두들 서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Peace And Love》앨범에서는 거의 모든 멤버들이 곡쓰기에 참여했고, 이런 취향은 Hurdy-Gurdy(현악기의 일종.), Cittern(16~17세기에 유행하던 기타 비슷한 악기.), Mandolin등 다양한 악기의 사용으로 표현됐지만, 초창기 folk-punk사운드를 좋아하던 골수팬들은 비난을 퍼부었다. 훌륭한 연주실력과, MacGowan의 탁월한 작곡능력은 계속해서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 갔지만, 예상치 못한 음주습관은 초창기의 왕성했던 창작력을 점점 무디게 만들었다. 1989년 한 인터뷰에서 MacGowan은 14살 이후로 완전히 술에 깨 있던 적(dead-straight sober)은 없었다고 고백했으며, '술을 마시면 천국같은 세상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1년 결국 MacGowan은 그룹을 떠나고, Clash의 보컬리스트인 Joe Strummer가 임시로 가입한다. 다음해 6월까지 밴드는 계속 활동했고, Joe Strummer는 그룹 Spider Stacy에 가담하기 위해 그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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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0 22:28 2007/05/1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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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ERS

Band Information/#·A·B·C·D·E·F | 2007/05/10 15:59 | Punk77
1974년 5월 런던에서 결성된 pub-rock 밴드인 101ers는 결성된지 4개월후에 브릭스턴의 Telegraph pub에서 데뷔공연을 가진다. 기타리스트/보컬리트인 Joe Strummer를 중심으로 펍 순회공연을 가지며 영국 펑크록을 기초를 다진다.

Sex Pistols의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은 Joe Strummer는 1976년 6월 Clash를 결성하기 위해 떠나고, 기타리스트 Clive Timperly 는 또다른 펑크밴드 The Passions에 가담하기 위해 그룹을 떠난다. Dan Kelleher(bass) 역시 펑크밴드 Derelicts로 떠나고 드러머 Richard Dudanski는 Raincoats, Public Image Limited와 작업하기 위해 그룹을 떠나며 그룹은 공중분해된다.

해산 후 1개월이 지나 밴드는 유일한 히트곡인 "Keys To Your Heart"을 인디펜던트 레이블인 Chiswick에서 발표하는데 1981년에 Joe Strummer는 데뷔앨범인《Elgin Avenue Breakdown》의 발매를 허가해준다. BBC live session과 스튜디오 라이브가 수록된 데뷔앨범은 R&B의 고전인 "Too Much Monkey Business", "Route 66" 등의 곡이 함께 수록됐는데 이곡들에서 후에 클래시의 보컬리스트가 되는 조스트러머의 젊은 목소리를 들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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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서섹스 지방 출신인 Eric Gouldman은 Wreckless Eric이라는 이름으로 Stiff 레코드사와 계약하면서 펍락과 초기펑크가 적절히 섞인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Nick Lowe가 프로듀스한 초기펑크시절의 고전으로 꼽히는 싱글 "Whole Wide World/Semaphore Signals"에서 Wreckless Eric은 특유의 허스키하고 음이 잘 맞지 않는 독특한 보컬 스타일로 많은 관심을 얻어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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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3 16:38 2007/05/0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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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연주자이자 재능있는 작곡가인 Graham Parker는 1976년 70년대의 명작에 속하는 두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록계에 등장했다. 7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던 선두주자 Bruce Springsteen, Van Morrison과 함께 분류되지만 그는 결코 믹구내에서는 대중의 환호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밖의 나라에서는 그를 70년대 중반 이후 로큰롤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의 노공자 계급의 환경속에서 자란 그는 10대초부터 음악을 궁색한 직업의 탈출구로 생각했다. 그가 지닌 록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힌 첫번째 그룹은 그가 막 13번째 생일을 맞았던 1960년대 중반에 활동한 Rolloing Stones였다. Los Angeles Times의 Robet Hilburn과의 대담에서

"음악은 언제나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학교에도 다녔고 이것저것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일은 차트에 오르는 일이었지요."

미국 흑인음악(Blues와 R&B에 근원을 둔)은 Stones와 그외의 다른 영국의 Blues-Rock 그룹들이 그들의 스타일을 형성시키는 확실한 근간이 됐고 그 또한 그런 형식에 열중하게 됐다. 그는 기타연주를 했고 Black Rockers라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Deep Cut Three가 되어 Stax-Volt, Chess 그리고 유명한 Motown 같은 레이블에 소속된 R&B 아티스트들이 녹음한 노래들을 선곡해 연주했다. 물론 연주나 레코드 계약에 관한 기회와는 거리가 먼 무명 밴드들이 많았고 그가 초기에 조직한그룹을 포함해 대부분이 대접을 못받았다.
절망적이었던 그의 동료들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음식과 쉴곳을 구할 돈을 벌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면서 상황이 변하기를 기대했다. 그가 한 일중에는 과학실험을 위한 동물사육, 빵집직원, 유리창닦이 그리고 1970년대 초에는 영국 Surrey에 있는 주유소에서 가스를 넣어주는 일을 했다. 그는 자주 밤이나 주말에 있는 연주를 보러 갔고 가끔 그가 만든 노래로 데모테입을 만들었다. 그중의 하나를 Hope And Anchor라는 술집으로 보냈는데 그곳에서 연주하는 록밴드들 중에 누군가가 들어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테입은 Hope And Anchor 빌딩에 레코딩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Dave Robinson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음악은 런던의 록음악 동호회의 여러 회원들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던 Robinson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리고 Parker를 위해 지금은 없어졌지만 최고수준의 Brinsley Schwarz, Ducks Deluxe 그리고 Boutempts 같은 밴드에서 단련된 연주가로 구성된 연주가로 구성된 혁신적인 새로운 밴드를 만들었다. Parker를 내세운 그룹 Rumors의 데모테입에 담긴 원곡들을 새롭게 연주했을때 Radio London의 "Honky Tonk"쇼 프로그램의 DJ가 되기에 충분한, 좀 껄끄러운 구석도 있었지만 정력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이러한 노출은 Parker와 Rumors를 미국에 본사가 있는 Mercury Records와 레코딩 계약을 얻게 했다. Nick Lowe가 제작한 그들의 데뷔앨범은 1975년에 발표됐다. The Rumors는 기타에 Brinsley Schwarz와 Martin Belmont, 키보드에 Bob Andrews, 베이스에 Andrew Bondar 그리고 드럼을 맡은 Steve Goulding으로 구성됐었다. 그들의 데뷔앨범 에는 "Nothing's Gonna Pull Us Apart", "Back To Schoolday", "Gypsy Blood" 같은 에너지가 가득한 곡들과 뭔가 특별한 것을 지적한 "White Honey" 가 수록되어 있었다.
곧바로 같은 수준의 모음집《Heart Treatment》를 만들었는데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후에 영화 Betwwen The Lines에 쓰였다. 두장의 앨범은 부인할 수 없는 R&B였으나 Van Morrison의 멜로디적 요소가 섞여 있었고 주류는 거의 펑크반란에 대한 암시를 다루고 있었다. Rolling Stone지의 Dave Marsh와 John Swenson이 평하기를 "자기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의 제안도 거부한 Parker의 거칠고 열정적이며 갈구하는 듯한 앨범들이다. 이 두장에 있는 펑크는 그를 둘러싼 문화가 붕괴한다는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놀라운 암시다." 라고 했다. 또한 1976년에 발표된 4곡짜리 Ep(원래 분홍색 음반으로 발매했음으로《The Pink Parker》라고 불렀다)에는 "Hold Back The Night"가 실려있다.

1976년말 Parker는 비평가들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을수 있었다.《Howlin' Wind》는 로큰롤의 클래식으로 꼽혔다. Rooling Stone지는 Parker와 그의 그룹 Rumors에게 그해의 최고의 신인밴드에게 수여하는 Red Suspender Awards를 주었다.Village Voice의 그해의 비평단 투표인단에서는 그들의 데뷔앨범 2장을 2위와 4위로 뽑았다. 또한 밴드는 본국과 해외에서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Parker의 문제는 그런 엄청난 성공을 어떻게 뛰어넘느냐는 것이었다. 기다리던 그의 세번째 앨범《Stick To Me》는 레코드 회사의 전폭적인 홍보활동으로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이전의 앨범들처럼 완벽한 내용은 아니었다. 비평가들은 주저없이 평을 보류했고 그 실망의 합창소리는 1978년 두장의 앨범으로 발매된 라이브 앨범 《Parkerilla》와 함께 더욱 크게 울렸다. 1977년과 1978년 발표된 앨범들은 그다지 졸작은 아니었지만-1970년대 말까지 최고의 작품대열에 속해 있었으므로-록계의 관점으로는 그들이 1976년도의 걸작을 쫒는것 대신에 선두로 나서야 했다. 영국의 Melody Maker(1979년 3월 17일자)의 Michael Watts와의 대담에서도 알수 있듯이 Parker는 그런 상황을 부드럽게 지나쳤다.

"사람들은 그런일이 자기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첫번째 혹평을 읽자마자 나에게 그런일이 생겼다는게 명확해 지더군요. 그리고 대처하게 됩니다. 그런일에 웃을수 있으면 좋으련만...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후에 다른 사람들도 겪게 되겠지요...그건 내가 금새 대스타가 되지 않은 것과 약간 관계가 있어요. 난 사람들의 생각을 상상할수 있죠. '오, 우리가 작은 실수를 저질렀구나. 별볼일 없는 아무 녀석에게 야단이나 치자.' 난 몇몇의 비평가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았고 그건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Parker는 Mercury의 부당한 홈보지원을 통한 그 레이블의 방해공작을 이유로 불미스러운 결말을 맺고 Arista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1979년 Arista에서 처음 발표한 앨범《Squeezing Out Sparks》(1976년에 발표한 앨범들에 비해 좋지는 않아도 좋은 앨범이었다.)에 쏟아지는 비평과 싸웠다. 이 앨범의 "Protection", "No One Hurts You"같은 곡들이 비평가들을 위해 수록되어 있었다. 미 전역이나 유럽 순회공연에서 새 앨범을 홍보할때 자주 이전 레이블을 모욕하는 곡인 "Mercury Poisoning"을 연주했다. 비록 초창기 발표 앨범이긴 했지만 앨범이나 싱글 레코드를 닫혀있는 AM 라디오에 방송할 수가 없었다. 추종자들은 늘어갔지만 순전히 말 뿐이었다.
그해말에 Village Voice지는《Squeezing Out Sparks》를 1979년 최고의 앨범에 선정했다. 1980년에 Arista에서 발표한《The Up Esculator》역시 좋은 앨범이었다. 앨범의 주제는 "Stupefaction"에서 자기만족에 반대하는 찬양의 노래에서부터 "Love Without Greed"와 "Endless Night"에서 욕망의 고통을 노래한 것까지 폭넓은 영역에 걸쳐있다. "Endless Night"의 백보컬은 다름아닌 Bruce Springsteen이었다.

1982년《Another Grey Area》가 나오기전 Parker와 그의 그룹 The Rumors는 해체했다. 분열은 자신들의 독립을 구축하려는 밴드의 끊임없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룹은 80년대 초까지 세장의 앨범을 발표했다.《Max》(1977년),《Purity Of Essence》(1980년 Stiff) )Parker는 "백밴드가 다른 사람의 앨범보다 자신들의 레코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때 그때가 헤어져야 할때지요."라고 말했다.《Another Grey Area》의 경우 모든 곡을 세션 뮤지션의 도움으로 완성시켰고 1983년 Arista에서 만든《Real McCaw>도 마찬가지였다. 두 앨범 모두 세련돼 보이기는 했지만 이전 앨범들만 못했다.

1984년 Parker는 Arista를 떠나 Elektra와 계약을 했다. 다음앨범을 위해 William Wittman(Cyndi Lauper의 성공작《She's So Unusual》을 맡아 제작하고 엔지니어로 일한 사람)과 손잡고 공동 제작자로 나섰다. Parker는

"난《Another Grey Area》에서 공동제작자로 자신 있었지만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어요. 비록 초보자라서 데시벨도 몰랐지만 내가 최근에 만든 몇장의 앨범보다《Sqeezing Out Sparks》같은 소리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985년 3월 Elektra에서《Steady Nerves》가 발매되자 그는 단언했다.

"이 앨범은 내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의혹을 떨쳐버릴 것입니다. 여기엔 내가 최그에 발표했던 앨범들에는 없던 소리가 들어있고...사람들은 듣게될 것이고 인정할 겁니다."

비록 Rumors와 재결합한 것은 아니지만 이 앨범 때문에 그는 Brinsley Schwarz와 옛관계로 돌아갔다.지금은 Schwarz가 리드기타를 앨범에서 세션으로 활약했던 George Small이 키보드를, Michael Braun이 드럼을, Kevin Jenkins가 베이스 기타를 맡았다.1985년 순회공연을 회상하며 그가 말하길

"당신이 Graham Parker And The Shot라고 말할때 이미 어떤 리듬을 얻게 됩니다."

라고 했다. 1987년 Parker는 RCA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The Mona Lisa's Sister》를 1988년 4월에 발표했다. 그 앨범은 Parker와 Brinsley Schwarz가 공동 제작했는데 1970년대 그의 작품들과 비교될만 하였다. 1970년대 앨범 가운데 몇장은 록클래식 대열에 합류했다 1987년 8월 11일자 Rolling Stone지는《Howlin' Wind》와 《Squeezing Out Sparks》를 20년간 발표된 베스트 록앨범 Top100가운데 포함시켰다.

출처 <핫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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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 LOWE

Band Information/N·O·P·Q·R·S | 2007/05/03 15:59 | Punk77
닉 로우(Nick Lowe)는 레코드 제작에서 직접 노래 부르는 일까지 팝뮤직계의 여러 분야에서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1970년대 수퍼스타로 이름을 날렸다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에 걸쳐 이뤄내는 만큼보다 더 열성적으로 닉 로우는 해나간 것이다. 공연장을 찾는 이들에게는 닉 로우라는 이름이 귀에 익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는 Elvis Costello, Chrissie Hynde & The Pretenders, Graham Parker 같은 여러 유명 음악인들의 앨범을 제작하여 가수들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인물이다. 가수겸 프로듀서로서 해내온 업적으로 그는 1978년 런던 데일리 미러지 독자선정 그해의 최우수 공로상 특별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해 Bomp 지의 바비 애브람스와 가졌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자신의 이러한 다양한 활동이 수반하는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처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내가 특별히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지 못한 것중에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 잇다면 그건 바로 개성을 집어내는 안목과 개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나 자신도 그러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릅니다만 어떤 사람이 개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잇습니다. 그게 바로 재능이겠지요. 나는 팔방미인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한가지도 최고로 잘 해내는건 없습니다. 나는 일을 할때 음악팬의 자세에서 생각을 합니다. 모든 일에 잇어 나는 굉장히 변덕스러워요. 매사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꾸준하지도 못하죠. 모든 팝스타들이 이래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이런식으로 살아가는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로우는 5,60년대 Elvis Presley, Beatles, Rolling Stones 같은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또래의 많은 청소년들이 그러했듯 그는 10대 초반에 음악계에 종사할 꿈을 품고 기타 코드를 익혔고 학교 찬구들과 밴드를 조직해 활동했다. 학교 친구인 Brinsley Schwarz(guitar), Bob Andrews(bass) 와 함께 조직햇던 스쿨밴드가 1965년 Kippington Lodge라는 그룹으로 변모했다. 영국 클럽가를 돌며 활동을 시작한 Kippington Lodge는 Parlophone/EMI 레이블과 계약을 따내어 60년대 후반에는 싱글도 여러장 발매했다. 1969년 Kippington Lodge는 정식멤버로 Billy Rankin을 영입하여 Brinsley Schwarz 라는 이름으로 재정비됐다. 로우의 지대한 능력은 1970년 10월에 낸 데뷔앨범《Brinsley Schwarz》의 수록곡 작곡에서 여실히 발휘됐다. 닉은 전 수록곡의 작곡에 참여했다. 뛰어난 작품인 "Country Girl"이 수록된 작품《Despite It All》(1971)에서 도 닉은 한 곡을 제외한 나머지 전 수록곡을 썼다.

그룹의 명성은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Ian Gomm의 가입으로 절정에 달했다. Brinsley Schwarz는 1070년대 초,중반의 영국 Pub-Rock 운동 (70년대 영국에서 등장한 서민적인 언더그라운드 록)의 중추이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그룹으로 인정받게 되었다.1972년 Brinsley Schwarz는《Silver Pistol》과《Nervous On The Road》 2장의 앨범을 내놓았다. 로우가 대부분의 곡들을 쓰긴 했지만 곰과 앤드류스도 노래를 만들었다. 이밖에 브린슬리 슈왈츠가 발표한 앨범들로는 1973년 United Artists 레이블을 통해 영국에서 발매된《Please Don't Ever Change》와 뒤에 록파일(ROCKPILE) 이라는 그룹에서 로우와 함께 활동하게 되는 데이브 에드먼즈(Dave Edmunds) 가 웨일즈 지방의 Rockfield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스하여 1974년 미국에서 발매된《The New Favorites Of Brinsley Shwarz》가 있다. 이 앨범에 있는 로우의 작품《(What's So Funny 'Bout) Peace, Love And Understanding》은 뒤에 엘비스 코스텔로가 리메이크 한 바 있다.

70년대 초, 중반 에드먼드와 브린슬리 슈왈츠는 많은 공연을 가졌다. 그룹은 1974년에는 데이빗 에드먼즈와 Electricians 라는 이름으로 David Bowie의 영화《Ziggy Stardust》사운드트랙에도 참여했다. 이해에 로우는 에드먼즈가 RCA에서 낸 앨범《Subtle As A Flying Mallet》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브린슬리 슈왈츠의 시대에도 종국이 다가왔다. 1975년 3월 마지막 싱글을 녹음하는 것을 끝으로 그룹이 해체되어 슈왈츠와 랜킨은 Sean Tyla, Martin Belmont와 함께 DUCKS DELUX 라는 퍼브록 밴드를 만들었으며 로우는 Jake Riviera와 함께 MODERN BOYS PRODUCTIONS 라는 팀을 결성했다. 이 팀이 발표한 풍자적인 싱글들로는 Tartan Horde 라는 이름으로 낸《Bay City Rollers We Love You》와 DISCO BROS 라는 이름으로 낸《Let's Go To The Disco》/《Everybody Dance》가있다.
헌데 브린슬리 슈왈츠는 없어지긴 했지만 잊혀진 건 아니어서 초창기에 만들었던 앨범 두장이 1978년 Capital 레코드사에서 《Brinsley Schwarz> 라는 타이틀의 더블 LP 세트로 미국에서 재발매했다. 또 같은 해 United Artists 레이블에서도《Fifteen Thoughts of Brinsley Schwarz》를 미국에서 발매시켰다. 로우는 브린슬리 슈왈츠 시절의 매니저였던 Dave Robinson 과 동료 제이크 리비에라가 설립한 신흥 레리블 STIFF 레코드에서 새출발을 했다.
이 레이블에서 발표한 첫번째 싱글은《Heart of The City>/《So It Goes》로 닉이 작곡하여 리비에라와 공동으로 프로듀스했다. 닉의 활약 덕에 Stiff 레코드사는 다수의 유망주들을 끌어올 수 있었다. 1977년도에 만들어진 Stiff레코드사의 샘플러 앨범《Bunch of Stiffs》에는 닉 로우의《I Love My Lable》외에 닉이 프로듀스한 Wreckless Eric의《Whole Wide World》, Magic Michael, Stone's Masonry의 노래들, Elvis Costello 의《Less Than Zero》등이 실렸다. 이 시기에 닉이 혼자서(혹은 데이브 에드먼즈와) 공동으로 작곡하여 레코딩하고 공연에서 선보인 노래들로는《Little Darlin'》,《What Did I Do Last Night>,《I Knew The Bride>등이 있다. 닉이 Stiff 레코드사에서 만든 첫 앨범인《Bowl》EP에는 그의 대표곡들이 된《Marie Provost>,《Shake That Rat>, 《Endless Sleep》,《Born A Woman>등의 곡이 담겨 있다. (위의 두 곡은 싱글로도 발매됨) 1977년 봄 에드먼즈와 로우는 Rockpile이라는 4인조 그룹을 조직하여 공연을 가졌다. 그 해에도 로우의 노래들은 Stiff 레코드사의 샘플러 앨범《Stiff Live Stiffs》와《Hits Greatest Stiffs》에 수록됐다.

자신의 곡을 녹음하고 공연을 갖는 것도 모자라 닉은 음반제작 작업에까지 손을 대어 빡빡하게 일상을 보냈다. 1976년에서 1978녀까지 그가 제작한 음반들로는 Damned의 데뷔앨범《Damned Damne Damned》와 싱글들, Alberto Y Los Paranoias의 펑크풍자 EP, Graham Parker의 데뷔앨범 전곡과 두번째 앨범에서의 한 곡, 세번째 앨범《Live At Marble Arch》의 세션, Ep《Pink Parker》엘비스 코스텔로의 처음 앨범 세장, Chrissie Hyde & The Pretenders의 데뷔싱글《Stop Your Sobbing》, Mickey Jupp의《Juppanese》앨범 절반 등이다.
1978년 4월 19일부터 6월 7일까지 Rockpile은 Elvis Costello & The Attractions, Mink Deville과 함께 미국공연을 가졌다.(Rockpile의 멤버로는 로우와 에드먼즈 외에 Billy Bremmer, Terry Williams가 있었다.) 그 해 후반기에 Rockpile은 에드먼즈의《Tracks On Wax 4》앨범에 참여했는데 이 앨범 안에 로우의 곡이 두 곡(《Television》,《Heart O fThe City》), 에드먼즈와 로우의 공동작품이 세 곡(《Deborah》,《What Looks Best On You》,《Never Been In Love》)이 있었다. 1978년 로우는 솔로활동을 시작해 나갔다.
그의 데뷔앨범은 영국에서는《Jesus Of Cool》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졌으나 1978년 3월 Columbia 레이블을 통해 미국에서 발매될때는《Pure Pop For Now People>이라는 타이틀로 바뀌었다. 이 앨범은 미국 차트 하위권에 머물렀다. Columbia 레이블에서 나온 두번째 앨범 《Labour Of Lust》(1979) 역시 비슷한 성적을 거뒀다. 몇년간의 공백뒤 로우는 1982년에《Nick The Knife》, 1983년에《The Abominable Shoeman》을 솔로앨범으로 다시 내놓았다.

1980년대에도 로우는 음반제작, 작곡, 공연등으로 시간을 쪼개가며 활동을 계속했다. 또 Johnny Cash의 의붓딸이자 컨트리 그룹 Carter Family의 멤버로 힘있는 음성을 지닌 컨트리 록 팝 싱어 Carlene Carter와 결혼함으로써 연예인 가문에 합류했다. 80년대 중반에 잠시 멈칫한 적도 있긴 하지만 로우와 데이브 에드먼즈는 다양한 작업을 함께 계속 해나갔다. 한번은 에드먼즈가 어느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내게는 닉 로우가 필요하지 않아요. 닉이 없이도 무대까지 걸어 나갈수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닉이 있어주는게 좋아요. 그 사람이 없다면 그렇게 신나지 않을 테니까요. 짜릿하지도 않을 테구요. 그 사람이 잇어야 주위 사람들이 흥겨워 하지요. 우선 닉이 먼저 흥겨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흥겨워 지니까요. 그렇게 되면 다들 흥겨워지기 시작하는 거지요."

1984년 Columbia 레코드사에서는 닉의 다섯번째 앨범《Nick Lowe And His Cowboy Outfit》을 발매했다. 카우보이 아웃핏은 그의 밴드 이름이었는데 멤버는 키보드의 Paul Corrack, 기타의 마틴 벨몬트, 드럼의 Bobby Irwin으로 구성됐다. 앨범의 첫 싱글《Half A Boy Half A Man>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차트 10위권안에 들었다. 1985년 중반 Nick & Cowboy Outfit은 《The Rose Of England》라는 앨범을 내놓았다. 1985년 후반부에는 이 앨범에서 나온 싱글《I Knew The Bride (When She Used To Rock And Roll)》이 미국에서 히트했다.
1986년 로우는 엘비스 코스텔로의 앨범《Blood And Chocolate》을 프로듀스했고 1987년에는 그의 공연에서 리듬 기타를 연주해 주었다.1988년 3월 Columbia 레이블에서는 일곱번째 앨범인 《Pinker And Producer Than Previous》가 나왔다. 수록곡중에《Lovers Jamboree》라는 노래는 에드먼즈가 프로듀스를 맡음으로써 닉 로우와 데이브 에드먼즈의 재결합이 이뤄진 곡이다.

출처 <핫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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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3 15:59 2007/05/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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